함 석헌 100년의 가르침 "깨어있는 씨알 이라야 산다 "

방송일시 : 2001. 415() 8:00 - 9:00 (K1TV) /담당PD : 이 완희

*기획의도

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함석헌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.
이른바 '민주화 시대'. 오늘은 '반독재 투쟁가' 함 석헌을 기억하지 않는다.  
종교다원의 시대. 사람들은 '종교사상가' 함 석헌의 이야기를 필요로 하지 
않는다. 

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왜 함 석헌을 얘기하는가.
그가 강조했던 '씨알사상' 그리고 '씨알의 스스로함'. 그것은 오늘을 사는 
우리에게 여전히 의미를 갖기 때문이며, 또 미래의 문제를 풀기 위한 
가르침이 되기 때문이다.  

<함 석헌 100년의 가르침- 깨어있는 씨알이라야 산다>는 격동의 한국 
근`현대사를 관통해 살았던 함석헌의 삶의 궤적과 사상의 변화를 추적한다. 
그로써 함 석헌이 말하는 '씨알사상' 그리고 '깨어있는 씨알'의 의미를 
해석해 보고 그것이 오늘에 갖는 의미를 되짚어 본다.

*주요내용

 

1. 그들은 왜 '함석헌 마니아'가 되었는가.
        -미국인 톰 코이너씨는 함 석헌 영어 싸이트를 운영중이다.
        -일본인 다나카 요시코씨는 일본에서 함 석헌 전집을 번역중이다.
        -일본의 혜천여자 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인간학 강좌에서 함 석헌 
         사상을 강의한다.
        -철도 승무원으로 일하던 김 성수씨는 작년 함석헌 사상을 가지고 
        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.
        -이들이 함 석헌 그리고 함 석헌 사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

2. 이른바 '함 석헌의 여자 스캔들' 그 당사자를 만나봤다. 
	-강연과 집필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을 때 함 석헌은 이른바 
          '여자 스캔들'에 휩싸인다.
	-그것은 지금까지도 인터넷을 통해 확산돼 '함석헌을 어떻게 볼
          것인가'라는 지속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.
         -취재진은 스캔들의 주인공을 찾아나섰다. 
         -올해 환갑을 넘긴 그녀의 방에는 2장의 사진이 걸려있었다. 
          함석헌과 간디..... 
         -그녀가 말하는 자신과 함석헌의 관계....
          그리고 세속인들의 관심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들어보았다.  
		 
 	
3. '이단자' 함석헌이 찾은 '실천하는 종교'란 무엇인가.
	-일본유학시절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함 석헌은 
          '무교회주의'를 선택한다.  
	-그러던 함 석헌은 1953'대선언'이란 시를 통해 스스로 
           이단자가 되길 선언한다. 
	-사회적 사명을 외면한 채 '역사적으로 잠자고 있던 기독교' 행한 
          폭탄 선언이었다. 
	-'실천하는 종교'를 고민하던 그가 선택한 것이 퀘이커였다. 
	-그들이 역사의식, 공동체의식, 그리고 과학적 신앙에 매료되었기 
          때문이다.
	-그가 그렇게 실천하는 종교를 찾아 나섰던 신앙의 변화는 결국 
           그의 씨알사상과 맞닿아 있었다. 

4. '씨알사상''반독재 민주화 투쟁'과는 어떤 관련이 있나.
	-함석헌은 '씨알'을 인간본래의 생명성으로 해석한다. 
	-스스로 싹트고 자라 삶의 주인으로 서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
          삶이라고 보고, 그 자연스런 생장을 방해하는 외부요인. 
          그것에 '저항'하는 것이 살아있는 '씨알의 본성'이라고 보았다.
	-그는 특히  '씨알의 씨알됨'을 강조했다. 진정한 씨알이란 늘 
          '자각의식을 가지고 깨어있어야 하고, 폭력과 맞서기 위해서 
          또 다른 씨알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. 
	-그런 그가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. 
	-결국 그의 6,70년대 민주화 운동은 자신의 씨알사상 그리고 
          '스스로 함''실천'이었다.

5.비폭력 저항과 절대 평화주의
	-6.70년대 독재에 항거하던 민주투사의 모습만이 함 석헌의 
          진면목은 아니다. 
	-그에겐 남들과 다른 그만의 투쟁 방식이 있었다. 
	-그것이 비폭력과 절대 평화주의였다. 
	-광주항쟁이후 투쟁방식이 극단으로 치닫던 80년대...
          그의 투쟁방식은 외면당하기도 한다. 
	-그때부터 그는 '투쟁 현장'에서 서서히 잊혀진 인물이 되어 갔다. 
	-그러나 오늘날 그의 비폭력 투쟁은 '보다 긴 역사의 안목'이었다는 
	 새로운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. 
         -그의 비폭력 사상과 평화주의가 갖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 
          보았다.
	

-"앞으로 2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모르지만,
 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바로 이런 '씨알사상'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. 
	
  자본주의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소위 물상화된 사회.
  대중매스컴이 지배하는 사회. 정보화, 집단화 군중화속에서 
  자기를 잃어버리고 사는 군중들에게 씨알 사상은 경종을 울리고 있다."